언제부턴가, “소통”이라는 표현이 나와, 곳곳에 갖다 붙이는데 정신이 없어 보인다.
“시민과의 소통을 위한 찾아가는 열린 행정” 이라던지, 소통의 문화 라던지, 다양한 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다.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고, 잘 이루어진다. 등의 의미 일 것이다.
참 좋은 표현이다. 다만, 정치권에서 사용한다는 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표적인 표현은 이런 것들이 있다. 무슨 사건이나 국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칠 때마다,
“국민과 소통하는”, “소통과 민생에 올인” 해야 하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난 이게 불만스럽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펴야 하는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편안한 삶을 위해 국민을 섬기기 위해 권한을 잠시 위임 받은 집단이다.
섬겨야 할 대상인 국민과, 소통을 하겠다는 것이 뭔가 부자연스럽다고 느끼지 않는가?
실질적으로 소통은 동등한 입장이거나, 아니면 아랫사람과 의견을 맞추기 위해 실제로 많이 사용된다. 즉 뭔가를 하려 하는 주체자가, 반대나 문제에 부딪칠 때 사용 하는 게 일반적으로 더 친숙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장이 직원과 소통하고 싶다고 하지, 직원이 사장님과 소통을 좀 하고 싶다고 표현하는 게 일반적이지는 않지 않는가? 면담을 하고 싶다던가, 아니면 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게 더 정상적이지 않을까? 물론 할 수도 있다. 다만 뭔가 부자연스럽다는 거다.
강제성이나 의무감이라고는 없는 소통이라는 단어를 섬겨야 할 주체인 국민들에게 난발하고 있다. 국민을 은근히 하대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은연중에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소통이 맞질 않으면, 자기 맘대로 하겠다는 소린가? 소통이 잘 안되면, 국민이 무식해서 그렇단 소린가?
가뜩이나 부정부패가 만연한 이 나라에, 시대를 열어가는 키워드로 선택하기에는 애매모호 하며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딱 좋은 표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이런 고민들 보다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한 시스템이 갖추어진 투명한 사회가 되는 것이 급선무일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