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경제가 던지는 물음
-과연 우리는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것일까

나 홀로 숲속을 거닐었지
아무것도 찾을 뜻은 없었네.
그런데 그늘 속에 피어 있는 작은 꽃 한송이 보았지
별처럼 반짝이고 눈망울처럼 예쁜 꽃을.
그 꽃을 꺾고 싶었는데
꽃이 애처롭게 말했네.
"내가 꺾여서 시들어버려야 겠어요?"
하여,꽃을 고스란히 뿌리째로 캐어
예쁜 집 뜨락으로 옮겨왔지.
조용한 자리에
다시 심어놓으니
이제 늘상 가지 치고
꽃피어 시들 줄 모르네.
-"발견", 괴테
경제가 죽어가고 있다. 성장은 거대한 벽에 도달했고 물가는 연일 폭등하고 있는것이다. 물가가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물가를 너무 올려왔기 때문이다.
흔히,물가안정이란 개념을 착각한다. 이명박 류의 물가안정이란 물가가 오르는것을 막는게 아니라 느리게 오르거나 떨어지는것을 막는것이다. 그게 그들의 안정개념이다.(또한 주류경제학의 개념이다) 따라서 오르면 놔두고 떨어지면 막으니 물가는 계속 오를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러려면 통화량을 지속적으로 증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주택같은 장기자산가격이 상승한다. 장기자산가격의 가파른 상승은 투자를 멈추게 하고 투기세를 증가시킨다. 투기세의 지속은 신용확장 위에서만 가능하다. 부채증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 부채증가가 더이상 성장을 견인할수 없을때 바로 "공황"이 오는것이다.
공황의 증상은 이윤하락,빈부격차증가,양극화증가다. 이명박 류는 이러한 증상발현을 눈가리고 아웅하기 위해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이윤하락의 노출을 막았다. 고환율,감세정책등이 바로 그것이다.
삼성전자,현대차의 가짜실적은 서민의 고혈위에서 이뤄진것이다. 이게 지속될수 있겠는가. 없다. 그래서 최근 이건희가 "개혁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환율이 떨어진 이상 가짜실적은 지속될수 없고 그 책임을 뒤집어씌울 희생양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이건희의호통질은 이제부터 고환율이 아니라 인원감축,임금삭감,단가하락이 시작될 전조인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무엇을 얻나. 바로 자산축적이다. 최근 등록금문제의 본질도 무엇인가. 대학의 자산축적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법률,의료의 문제 또한 과도한 자산축적이 본질이다. 그들은 자산축적을 통해 경쟁의 장으로 떠밀려지길 거부하는것이다. 그러한 경쟁의 실종은 잠재성장률의 하락,사회적후생의 감소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사회정의의 실종을 가져온다.
사회정의의 실종은 인간의 소외를 가져온다. 인간의 소외는 사람의 소중함을 무너뜨리고,사람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를 무너뜨린다. 왠지 사회주의틱한 스멜이 나는가. 그렇지 않다. 시장자유주의 지고지선의 가치는 바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법의 정의와는 담을 쌓은 이명박,이건희류가 이끌 한국경제의 미래는 절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것이다.
그속에서 최근 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우울증도 만연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것은 인간이 인간속에서 그리고 사회속에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합리적인 경험에 비추어서 의식적인 목표를 설정하여 변화를 창조할수 있는 능력으로 여타 생물들과 구분된다. 그런데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채 방황하고 변화에 대한 희망없이 좌절하고 있는것이다.
누구는 일(노동)로서 우울증으로 이겨 내라고 조언한다. 정신과 약물 추천은 기본이요,연애 여행 이사조언도 빠지지 않는다. 책을 통해 위안을 발견 하라는 조언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우울증을 이겨낼수 있을까. 자살의 폭증을 막아낼수 있을까.
어려운 이야기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사회의 정신적 증상은 말기수준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뭘 알더라도 결코 그것을 행동에 옮겨내지 못하는 이기주의 극단의 피로감에 도달해있는것이다. 알지만 행동하지 않고,행동하더라도 바뀌리란 희망이 없는것이다.
선각자들은 이걸 모르는걸로 본다. 양명학연론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다는것은 없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것은 사실 모르는것이다. 아름다운 색을 보는것은 아는것에 속하고 그 색을 좋아하는것은 행동에 속한다. 아름다운 색을 볼때 이미 좋아하게 되니 그것을 보았을때 결심을 하고 좋아하는것은 아니다. 따라서 알면 그 순간 곧 행동하는것만이 오직 아는것이다."
이 구절의 핵은 바로 "한결같이 참되고 조금의 거짓 없는 삶"이다. 참되지 않고 거짓투성이의 위선과 기만이 사회공기를 뒤덮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타락해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을 바꿔낼수 있는 길은 오직 아는 순간 행동하는것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어떻해야 할까. 물가안정을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안정이란 당연히 떨어지는것을 막는것이다. 그 물가지수에는 당연히 주택도 포함되어야 한다.
10년새 등록금이 두배 올랐다지만 아파트가격은 세배 올랐다. 그 아파트버블은 놔둔채 등록금버블만 꺼뜨리자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주택보유세 2.0%부과는 정권교체후 바로 시행되어야 한다. 물가급등을 불러온 통화팽창,고환율정책도 중단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부당한 수준의 자산축적을 달성한 대기업의 과잉잉여를 조세정책으로 환수해내야 한다.
의료민영화도 막아야 하며,법률시장의 팽창움직임도 저지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돈먹는 하마인 변호사마피아들이 아니라 "성실하고 착한 서민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수 있는 사회정의"이기 때문이다.
사학을 혁파하고 노동자들에게 연간최저수입을 보장해야 한다. 등록금문제는 그 하나만이 아니라 전체사회직업군 임금의 최소한의 형평을 마련할수있는 제도적 토대위에서 논의되어야지 개별적으로 다뤄질 혹은 단계적으로 먼저 이뤄낼사안이 결코 아니다. 빈부격차완화,양극화완화,비정규직 처우개선,고졸차별이 완화되지 않는 이상 등록금인하는 대학생들의 술값,옷값,여행비,오락비지원책에 불과할뿐이다.
이것들의 핵심은 바로 거짓과 위선의 제거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그리고 이건희만 거짓과 위선을 행하는것이 아니다. 그들은 교활하기 이를데없으며 채찍과 당근을 병행한다. 사다리 구조로 계층간갈등을 유발하며 소수의 성공을 모두가 가능한 기회 인양 포장한다. 그런 기제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너의 양심과 실천을 가로막는것"에 있는것이다.
바로 그것으로부터 초연할수 있어야 하는것이다. 성장뿐만 아니라 변화역시 하나의 구조속에서 이루어져야만 건전한것이다. 이미 질서로 자리잡은 것은 죽은것이다. 살아있는 구조 속에서 쉴새없는 역동성을 주체적으로 유발시켜낼수 있을때라야만이 개인과 사회는 병들지 않는다.
그것을 가능케하는것이 바로 참여민주주의인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포기하면 한국경제가 자살해 들어가는것을 결코 막아낼수 없다. 사람들이 자살하는것 역시 막아낼수 없다. 우울증 역시도 마찬가지다.
양극화,빈부격차,자살,우울,고통,권태,절망으로부터 벗어나 희망있는 목표로 사회를 변모시켜내는 길의 입구 그 초입에 "과연 우리는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것일까"라는 펫말을 세워놓자. 그 대답이 합의되는 순간 우리는 그 대답의 방향 대로 이미 행동하며 나아갈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그래야 하고 나머지는 따라가야 한다. 그럴수있을때 죽어가는 경제가 우리에게 묻는 절망적 질문에 대한 해법을 발견해낼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