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의 위기는 다름 아닌 이인제 씨의 존재였습니다. 이회창 씨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2001년, 2002년 노사모가
폭발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느낀 위기감은 이회창 씨의 존재보다는 이인제 씨가 민주당 후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인제 씨는 3당 합당에 따라가 도지사도 하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불복도 한 사람인데 그
런 사람이 민주당에 와서 선거대책위원장이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하니까, 전통적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 즉
소신을 이익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해 오던 젊은 사람들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많은 위험을 감수했던 사람들이 보면서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겠습니까. 그 위기감 위에서 제가 그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노무현 회고록「성공과 좌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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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위기는 다름 아닌 손학규씨의 존재였습니다. 박근혜 씨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2011년, 2012년 시민광장이
폭발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느낀 위기감은 박근혜 씨의 존재보다는 손학규 씨가 범야권진보진영의 대통령 단일후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손학규 씨는 한나라당에 들어가 도지사도 하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에 참여하기도 전에 소속당 대선후보 3위를 한다는 이유때문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우리쪽으로 온 사람인데 그런 사
람이 제1야당인 민주당의 당대표가 되고 범야권진보진영의 대통령 단일후보가 되려고 하니까, 전통적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 즉 소신을 이익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해 오던 젊은 사람들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많은 위험을 감수했던 사람들
이 보면서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겠습니까. 그 위기감 위에서 제가 그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결국 대통
령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유시민 회고록 「도전과 응전」중에서)
※유시민 회고록「도전과 응전」은 가상의 제목입니다.^^